교토는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들과 정갈한 일본식 정원들, 그리고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절들. 이대수는 가모강 근처의 작은 아파트를 임대했다. 창문을 열면 강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히가시야마의 실루엣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여기가 내 새로운 시작점이구나."
대수는 짐을 풀며 중얼거렸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역까지, 교토역에서 새 집까지의 여정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일본어 실력이 아직 서툴렀지만, 미리 준비해둔 필수 표현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작은 원룸이었지만 효율적으로 공간이 활용된 일본식 아파트는 대수의 마음에 쏙 들었다. 무엇보다 창가에 작은 책상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곳에서 그는 소설을 쓰고, 가끔은 수학 문제도 풀어볼 생각이었다.
짐을 대충 정리한 후, 대수는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한 식사거리를 사왔다. 오니기리와 녹차. 단촐한 첫 식사였지만,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기에 충분했다.
"이타다키마스."
서툰 일본어로 식사 인사를 한 후, 대수는 스마트폰을 열어 일정을 확인했다. 내일은 교토대학 나카무라 교수와의 첫 만남이 있고, 모레부터는 일본어 학교 수업이 시작된다. 그리고 내일 저녁에는 '수학적 사랑방정식' 69화를 연재해야 했다.
"108분씩 차근차근 해나가자."
대수는 작은 스탠드를 켜고 노트북을 열었다. 창밖으로는 어둠이 내려앉은 교토의 밤 풍경이 펼쳐졌다. 가모강에 비친 불빛들이 반짝였다. 그는 잠시 그 풍경에 넋을 잃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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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대수는 일찍 일어나 교토대학으로 향했다. 나카무라 교수와의 약속은 10시였지만, 그는 캠퍼스를 미리 둘러보고 싶었다.
교토대학의 캠퍼스는 고요했다.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며, 대수는 이곳에서의 새로운 학문적 경험에 대한 기대감을 느꼈다. 비록 정식 학생은 아니지만, 특별 청강생으로서 세미나에 참여하고 가끔 발표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회였다.
수학과 건물 앞에 도착한 대수는 잠시 주저했다. 다시 학교에 온다는 건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달랐다. 전업 작가로서,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으로서.
"이대수 씨인가요?"
일본어로 된 질문에 대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안경을 쓴 남성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이, 이대수데스." 대수는 서툰 일본어로 대답했다.
"나카무라입니다. 김민혁 교수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악수를 나누고 나카무라 교수의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은 서울대 김 교수의 연구실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책장에 가지런히 정리된 수학 서적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일본 전통 공예품들이 놓여 있었다.
"김 교수에게 들었습니다. 당신은 수학자이면서 소설가라고요."
나카무라 교수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한국어는 서툴렀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은 소설에 더 집중하고 있지만, 수학도 계속 공부하고 싶습니다."
나카무라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롭군요. 저는 항상 수학과 예술이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특히 일본의 전통 미학에는 수학적 원리가 많이 숨어 있죠."
그들은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갔다. 나카무라 교수는 김 교수보다 훨씬 부드러운 성격이었다. 그는 대수에게 교토대학의 세미나 일정과 도서관 이용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 우리 연구팀의 세미나가 있습니다. 부담 없이 참석하세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간단한 발표를 준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대수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교토에서의 첫 학문적 만남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아, 그리고..."
나카무라 교수는 서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대수에게 건넸다.
"당신의 소설이 일본어로 번역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한 권 구해놨습니다."
대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수학적 사랑방정식'의 일본어판이었다. 표지에는 '수식으로 풀어내는 사랑의 비밀(数式で解く恋の秘密)'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이게 어떻게..."
"일본의 웹소설 플랫폼에서 번역 출간했더군요. 제 딸이 이 소설의 팬이라서 알게 되었습니다."
대수는 감격스러웠다. 자신의 소설이 일본에서도 읽히고 있다니. 이것은 예상치 못한 기쁨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나카무라 교수의 연구실을 나온 대수는 캠퍼스를 한 바퀴 더 돌아보기로 했다. 봄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캠퍼스는 평화로웠다. 그는 벤치에 앉아 방금 받은 자신의 일본어판 소설을 펼쳐보았다.
번역은 꽤 자연스러웠다. 특히 수학적 개념들이 일본어로도 정확하게 전달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대수는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이곳 교토에서 그는 더 넓은 독자층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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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학교 첫날, 대수는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교실에 들어섰다. 그의 반에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있었다. 중국, 대만, 태국, 프랑스, 미국 등. 모두 각자의 이유로 일본어를 배우고 있었다.
"미나상, 오하요 고자이마스."
선생님의 인사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대수는 최대한 집중하며 수업을 따라갔다. 그의 일본어 실력은 중급 초반 정도로, 기본적인 일상 대화는 가능했지만 아직 유창하지는 않았다.
점심시간, 같은 반 한국인 유학생 한명희가 대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는 뭐 하셨어요?"
"대학원생이었어요, 수학과. 그리고... 소설도 씁니다."
명희의 눈이 커졌다.
"혹시... '수학적 사랑방정식'의 이대수 작가님이세요?"
대수는 놀랐다. 여기서 자신의 소설을 아는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네, 맞아요."
"와, 정말 우연이네요! 저 그 소설 완전 팬이에요! 친구들한테도 많이 추천했어요."
대수는 쑥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해외에서 독자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새 소설을 준비 중이에요. '균형의 방정식'이라고."
명희는 관심 있게 물었다.
"어떤 내용인데요?"
"음... 수학과 대학원생이 소설가로 전향하면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자전적인 소설이네요?"
대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많은 부분이 제 경험에서 비롯되었어요."
그들은 점심 내내 소설과 일본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희는 미술을 공부하러 교토에 온 학생이었다. 대수에게는 교토에서 만난 첫 한국인 친구였다.
"주말에 혹시 시간 되세요? 교토 곳곳을 안내해 드릴게요. 제가 벌써 6개월째 살고 있거든요."
대수는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곳에서의 안정적인 일상과 새로운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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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대수는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와 '수학적 사랑방정식' 69화 연재를 마무리했다. 이 작품은 곧 완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앞으로 10회 정도면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원고를 업로드한 후, 대수는 창가로 다가가 교토의 밤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가모강의 물결에 비친 불빛들이 마치 수학 함수의 그래프처럼 일렁였다. 그는 노트북을 다시 열어 '균형의 방정식' 원고 파일을 열었다.
"태수는 교토에서의 첫날, 자신의 삶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음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장소의 변화가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 사고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의 관계가 변하고 있었다..."
대수는 108분 동안 새 소설에 집중했다. 교토에서의 첫인상, 나카무라 교수와의 만남, 일본어 학교에서의 경험. 모든 것이 그의 손끝에서 이야기로 탄생했다.
108분이 지나자, 그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차를 한 잔 마시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캐슬문학에서 메시지가 와있었다.
[이대수 작가님, '균형의 방정식' 기획안이 편집회의에서 승인되었습니다. 첫 회 연재는 언제부터 가능할까요?]
대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래 계획보다 소설 집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이 그에게 풍부한 영감을 주고 있었다.
[2주 후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반부 5화 정도를 미리 완성해 보내드리겠습니다.]
답장을 보낸 후, 대수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교토의 밤은 서울과는 다른 리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더 느리게, 더 고요하게. 그는 이 도시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어가고 있었다.
"108분의 소설, 108분의 수학, 108분의 일본어... 그리고 108분의 명상."
대수는 중얼거리며 작은 방석을 꺼내 바닥에 펴놓았다. 무경 스님에게 배운 명상법을 따라, 그는 등을 바로 세우고 앉아 호흡에 집중했다. 들이쉬고, 내쉬고. 마음속의 잡념들이 하나둘 가라앉았다.
명상을 마친 후, 대수는 무경 스님이 준 노트를 펼쳤다. 내일은 스님이 추천한 교토의 한 절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남쪽 교외에 위치한 작은 절, 토후쿠지(東福寺).
"동쪽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절이라... 좋은 기운을 받아올 수 있겠지."
대수는 내일의 일정을 정리했다. 오전에는 일본어 학교, 오후에는 토후쿠지 방문, 저녁에는 수학 세미나 자료 준비. 그리고 각 활동 사이사이에 108분의 온전한 집중 시간.
잠자리에 들기 전, 그는 김민혁 교수에게 짧은 이메일을 보냈다.
[교수님, 교토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나카무라 교수님을 만났고, 세미나 참석 일정도 잡았습니다. 다음 달 첫 발표 주제로 '위상수학적 자료 분석과 문학적 구조화'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견 부탁드립니다.]
이메일을 보낸 후, 대수는 깊은 만족감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완벽한 균형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그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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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대수는 일본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바로 토후쿠지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약 30분, 그는 조용한 교외 지역에 도착했다.
토후쿠지는 예상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절이었다. 특히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봄이라 신록이 푸르렀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선 대수는 고요한 정원에 먼저 마음을 빼앗겼다.
"와, 이런 곳이..."
돌과 모래, 이끼와 나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일본식 정원은 마치 살아있는 수학 공식 같았다. 모든 것이 정확한 비율과 위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수는 천천히 정원을 거닐며 스님의 노트에 적힌 조언을 떠올렸다.
'토후쿠지의 정원은 걸으며 명상하기에 완벽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삶의 여정을 상징한다.'
그는 걸음을 늦추고 의식적으로 발걸음에 집중했다. 오른발, 왼발. 땅을 밟는 감각, 이동하는 느낌. 모든 순간에 깨어있으려고 노력했다.
정원을 지나 본당으로 향하는 길, 대수는 문득 한 스님을 발견했다. 80대로 보이는 노스님이 베란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스님은 대수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한국에서 오셨군요."
일본어였지만 대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네, 한국에서 왔습니다."
대수는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차 한 잔 하시겠어요?"
예상치 못한 제안에 대수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스님 옆에 앉아 내어주는 차를 받았다.
"처음 오셨나요, 교토에?"
"네, 일주일 전에 왔습니다. 6개월 정도 머물 예정입니다."
스님은 미소를 지었다.
"교토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도시지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그가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스님, 저는... 균형을 찾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여러 요소들 사이의 균형을요."
왜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대수 자신도 의아했지만, 이 고요한 분위기와 차분한 스님 앞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린 것 같았다.
스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균형이라... 좋은 단어입니다. 하지만 균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것임을 기억하세요. 마치 이 정원처럼요.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대수는 스님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균형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조정해나가는 과정이었다.
"감사합니다, 스님."
차를 다 마신 후, 대수는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님은 작별 인사로 짧은 시를 들려주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인생도 흔들림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법입니다."
토후쿠지를 나오면서 대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그는 즉시 노트북을 꺼내 방금의 경험을 기록했다. '균형의 방정식'에 추가할 장면이었다.
그날 저녁, 대수는 작은 아파트로 돌아와 수학 세미나 자료를 준비하며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은 지금 어떤 방정식을 그리고 있을까? 그 방정식의 해는 무엇일까?
그는 노트북을 열고 새로운 문서를 만들었다. 제목은 '나의 방정식'. 여기에 그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변수들을 하나하나 적어내려갔다.
"소설 쓰기: x, 수학 연구: y, 일본어 공부: z, 명상과 휴식: w..."
각 변수에 지금의 비중을 숫자로 표현해봤다. 소설이 가장 높은 7, 수학이 5, 일본어가 4, 명상이 3.
"흠, 이 비율이 최적일까?"
대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적었다.
"목표 비율 - 소설: 6, 수학: 4, 일본어: 5, 명상: 5"
명상과 일본어 학습에 더 비중을 두고, 소설에 약간의 여유를 두는 것.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균형점이었다.
"108분씩 차근차근."
대수는 중얼거리며 다시 수학 세미나 자료로 돌아갔다. 오늘의 108분은 수학에 할당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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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빠르게 지나갔다. 대수는 교토에서의 생활에 점차 적응해가고 있었다. 일본어 실력도 조금씩 향상되어 이제는 간단한 토론도 가능했다.
나카무라 교수의 세미나에서 그는 첫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주제는 '위상수학적 자료 분석과 문학적 구조화'였다. 수학적 개념을 문학 작품의 구조 분석에 적용한 연구였다. 의외로 참석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이상적인 함수 방정식 f는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나타내고, 각 등장인물은 그 함수의 특이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인물 간의 관계는 위상공간에서의 경로로 해석할 수 있죠."
발표 후, 몇몇 학생들이 대수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특히 문학과 수학의 융합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었다.
"대수 씨의 접근법은 매우 독특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융합 연구를 진행하실 건가요?"
"네, 가능하다면요. 사실 제 소설에도 이런 개념들을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날 저녁, 나카무라 교수는 대수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교토의 전통 있는 이자카야였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매우 혁신적인 접근법이군요."
나카무라 교수는 사케를 따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사실 제가 당신을 초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카무라 교수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했다.
"다음 학기에 우리 대학에서 특별 강좌를 개설하려고 합니다. '수학과 문학의 교차점'이라는 주제로요. 대수 씨가 그 강좌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대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요? 하지만 저는 정식 교수도 아니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수 씨는 실제로 두 분야를 모두 경험하고 있잖아요. 강좌는 주 1회, 90분 수업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그의 균형 방정식에 새로운 변수가 추가되는 셈이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교수님. 생각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 대수는 마음이 복잡했다. 강의를 맡는다면 소설 쓰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좋은 기회였다. 수학과 문학의 융합, 그가 가장 관심 있는 주제였다.
아파트에 도착한 그는 노트북을 열었다. 이메일이 몇 통 와있었다. 그중 한국에서 온 메일이 눈에 띄었다. 김민혁 교수였다.
[대수 군, 나카무라에게서 소식 들었네. 세미나 발표가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하더군. 앞으로도 좋은 성과 기대하네.]
대수는 미소 지었다. 김 교수다운 짧고 건조한 메일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컸다.
다음으로 캐슬문학에서 온 메일을 열었다.
['균형의 방정식' 1-5화 원고 잘 받았습니다. 다음 주부터 연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독자들의 반응이 기대되네요. 특히 교토를 배경으로 한 장면들이 생생합니다.]
마지막으로 법화사 무경 스님에게서 온 메일이 있었다.
[대수야, 교토 생활은 어떠니? 토후쿠지에 갔다 왔다고 들었구나. 그곳의 노스님은 내 옛 스승이시다. 네가 좋은 가르침을 받았기를 바란다. 인생의 방정식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마음의 평화임을 잊지 말거라.]
대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삶은 지금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연결고리들은 여전히 그를 지지해주고 있었고, 교토에서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리고 있었다.
그는 '나의 방정식' 문서를 다시 열었다. 이제 새로운 변수를 추가해야 했다. '강의: v'. 이 변수는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할까?
대수는 창밖의 교토 야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균형은 고정된 것이 아닌, 끊임없이 조정해나가는 과정이라는 토후쿠지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강의를 수락하자."
그는 결심했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균형점. 그의 삶이라는 방정식은 계속해서 더 복잡하고 풍요로워지고 있었다.
균형의 방정식 - 에필로그 (2) | 2025.0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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